먼 옛날 백두산의 깊은 산골짜기에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추금이라는 한 과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 앞뜰에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흰색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꽃들을 가득 심어 놓았는데 그 꽃의 향기가 언제나 집안 가득하였습니다. 추금은 많은 정성을 들여 그 꽃을 가꾸었습니다.그 꽃은 죽은 남편이 해마다 정성들여 가꾸어 오던 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꽃이 필 때마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가버린 남편을 그리워하며 슬픔에 젖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무렵, 마을의 매파(중매쟁이)가 추금에게 재혼할 것을 졸라대기 시작하였습니다. 끊임없는 매파의 설득을 받고 이 젊은 과부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뜰에 핀 하얀 꽃들이 하나둘씩 갑자기 분홍색으로 변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추금은 꽃을 살펴보기 위해 꽃밭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밭에는 죽은 남편이 나타 나서 미소를 짓고 서 있었습니다.  ‘부인! 내가 다시 돌아왔소.” 부인은 생각지도 못했던 기쁨에 눈물을 흘리며 남편의 따뜻한 품에 안겼습니다. 이후,이들 부부는 아들과 함께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극심한 가뭄이 들어 모든 풀과 나무가 말라 죽어 갔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저마다 살길을 찾아 고향을 떠났습니다. “여보, 넓은 만주땅으로 갑시다. 그곳은 가뭄이 들지 않았다고 하니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게요. 그곳으로 가서 농사를 지읍시다.”  부인은 남편의 뜻에 따라 이삿짐을 쌌습니다. 가재 도구를 챙기며 부인은 아끼고 보살폈던 꽃 중에서 흰색과 분홍색의 꽃을 한 그루 씩 캐어 소중히 싸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이들 부부가 만주땅으로 가서 정착한 지도 어언 l0년이 지났습니다. 고왔던 부인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고,어린 아들도 이제는 어엿한 장정이 되어 곧 결혼도 시켜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뒷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던 아들이 독사에게 물려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이들 부부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여보, 여기서 살면 죽은 아들 생각이 더욱 간절할테니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부인도 남편의 뜻에 따라 아들의 시신을 뜰의 꽃밭에 묻어 주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옛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늙어 다시 자식을 낳을 수는 없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금실이 더욱 좋아졌습니다. 어느 날,부인는 나무를 하러 가는 남편을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남편을 도와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 부부가 산에 이르러 나무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절벽 위에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 한송이가 부인의 눈에 띄었다. 부인은 그 꽃을 몹시 갖고 싶어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아내를 위해 그 꽃을 꺾어 오려고 절벽을 기어올라갔습니다.그러나 남편은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그만 절벽 아래도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앗!” 부인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엄마!엄마!” 부인은 자신을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산속에 있어야 할 자신이 뜻밖에도 자신의 방안에 앉아 있는 것이였습니다. 부인은 그제야 자신이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부인은 더욱 허전해서 곧 뜰로 나가 꽃을 살펴보았습니다. 밤 사이에 하얀 꽃이 분홍색으로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흔들리는 내 마음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죽은 남편이 꿈에서나마 일생을 같이하여 죽었구나.” 부인은 그 동안 매파로 인해 혼들렸던 자신을 반성하고 마음을 더욱 굳게 하였습니다. 그 후 훌륭하게 성장한 아들은 무과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때 만주 지방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추금 부인을 납치 해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부인은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그래도 아름다웠기 때문에 오랑캐 두목은 그녀를 아내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끝내 거절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두목의 집이 그 옛날 부인이 꿈에서 남편과 함께 살던 만주의 바로 그 집이었다 합니다. 두목은 완강히 거절하는 추금 부인을 방에 가두어 놓고 매일 찾아와 열쇠를 주며 아내가 되어 달라고 졸라댔습니다. 그러나 추금 부인은 끝까지 열쇠 뭉치를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 무과에 급제한 아들이 한양에서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오랑캐에게 끌려갔다는 사실을 알고는 병사들을 이끌고 어머니를 구출하기 위해 만주 땅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아들은 마침내 어머니가 갇혀 있는 곳을 찾아내서 그 곳을 밤에 급습하여 무사히 어머니를 구출해 냈습니다. 이때 부인이 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집은 너의 아버지께서 끝까지 나를 지켜 주신 집이다.” 부인은 그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아들에게 소상히 들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뜰로 나간 부인은 또 한번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날 꿈속에서, 죽은 아들을 묻었던 곳과 열쇠를 내던졌던 곳에 보랏빛의 꽃이 피어 있었던 것입니다. 부인은 그 꽃들을 캐어 품에 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아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